그림은 내면의 감정을 화면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억지로 그려낸 그림들은 벽에 가로막혀
소통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처럼 어떠한 이야기도 전할 수 없는 그저 색의 유희일 뿐이다.
나의 작업은 일상의 단면속에서 만나게 되는 설렘의 순간, 잊히지 않는 과거의 어느 날들,
하고싶지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펜이 아닌 물감으로 캔버스위에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들이지만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슴에 묻어 뒀을 만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꿈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장녀로 태어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시켜졌고 내가 하고싶은 것 보다 부모가 바라는 것을 선택하길 강요 받았다.
이런 환경 탓인지 내 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내 의견이 좀 더 정당하다고 설득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주눅 들어있다. 하지만 내 작업 공간안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행복하다.
어디든 떠날 수 있고, 하고싶은 말도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 존재의 의미인 것이다.
내 그림에는 구름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구름은 우주의 수증기가 모여 생긴 형상이다. 내가 만든 구름은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 행복이라는 내면의 감정이 모여 생긴 형상이다.
솜사탕 같기도 하고 폭신한 솜 같기도 한 것이 자유롭게 떠다니며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하늘을 꾸며주고 있는 구름의 속성은
내가 하고싶고 만들고 싶었던 내 삶의 여러가지 모양을 화면위로 꾸며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늘 푸근하고 따뜻할 것만 같은 구름위의 세상은 나만의 유토피아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늘을 그리려면 하늘을 자주 봐야 하고 나무를 그리려면 나무를 많이 봐야 잘 그릴 수 있다.
행복을 그리려면 역시 행복을 자주 들여다봐야 잘 그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안의 행복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복하고 싶고 그 행복한 마음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게 주신 능력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품고 살았던 꿈과 행복을
다시 한번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뒤늦은 나이에 꾸게 된다.